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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98년부터 서기 161년까지 약60년 동안의 이야기를 한 로마인 이야기 9권 현제의 세기
이 시기의 로마제국의 황제인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3명의 황제와 8권에서 마지막으로 이야기한 네르바 황제, 그리고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의 다음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재임한 시대를 역사가들은 '오현제 시대' 라고 부르고 동시대 로마인들도 'Saeculum Aureum(황금시대)' 라 불렀던 시대이다.
트라야누스 황제 그가 이룬 많은 업적 중에 다키아전쟁을 통한 영토확장은 빼놓을 수 없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에게 신임을 받았던 그였기에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못 다 이루고 오히려 실각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다키아전쟁을 재개해 더이상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지 말라는 아우구스투스의 유훈을 처음으로 어긴 로마 제국 역사상 특기할 만한 사건이지만 문헌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다키아 전쟁기를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는 트라야누스 원기둥이라는 전쟁 장면 약 140개를 조각한 유적을 통해 서술했다.
이렇게 다키아 전쟁을 통해 영토확장을 한 트라야누스 황제는 전쟁과 영토확장 이외의 내치, 공공사업에 많은 역량을 부어 특히 도나우 강에 길이 1135미터, 높이 27미터, 너비 12미터 의 규모에 20개의 석조교각이 떠받치는 '트라야누스 다리'(다키아 정복을 위한 목적이긴 했지만)를 1년만에 완공하기도 하였다. 이 다리는 제국 말기 야만족의 침입이 두려워 목조부분을 파괴시켜 다리의 기능을 상실하지만 교각은 19세기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도나우강에서의 대형선박의 통행을 위해 폭파시킬 때까지 남아있었을 정도로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지칠줄 모르는 일꾼' 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제국 전역을 순행하여 제위기간 21년 중 근 10년이라는 기간동안 이탈리아 본국 밖으로 순행을 하며 군단순회, 속주의 공공사업등을 재정비하였다. 특히 브리타니아(영국)에는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축조하여 라인강의 게르마니아 방벽 못지 않은 튼튼한 방위체제를 완성하였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재위기간 있었던 많은 일 중 유대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서기 131년에 발생한 유대교도의 반란에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4만 병력의 군단병과 보조병을 동원해 융단폭격 방식으로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나가며 토벌해 서기 134년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136년 9월 26일 마지막으로 저항하던 세력을 베틸이라는 곳에서 전멸하면서 유대의 반란으로 시작된 유대전쟁이 끝났다. 이렇게 유대전쟁을 끝낸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대교도의 예루살렘에서 강제추방하는 이산을 뜻하는 '디아스포라'를 명령한다. 원로원의 의결을 거쳐 공식발효한 '디아스포라'는 2차대전 종전이후 이스라엘 국가가 수립될 때까지 1800년이 넘도록 계속된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뒤를 이어 서기 138년부터 161년까지 23년동안 재위에 있으면서 특기할만한 새로운 일은 하나도 하지 않은채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기만 하며 내치에 힘을 쓴다. 그 결과 동시대의 로마인들에게 '질서있는 평온'이라는 수식어를 듣는 시기의 황제가 된다.
이 시기의 로마제국의 황제인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3명의 황제와 8권에서 마지막으로 이야기한 네르바 황제, 그리고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의 다음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재임한 시대를 역사가들은 '오현제 시대' 라고 부르고 동시대 로마인들도 'Saeculum Aureum(황금시대)' 라 불렀던 시대이다.
트라야누스 황제 그가 이룬 많은 업적 중에 다키아전쟁을 통한 영토확장은 빼놓을 수 없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에게 신임을 받았던 그였기에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못 다 이루고 오히려 실각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다키아전쟁을 재개해 더이상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지 말라는 아우구스투스의 유훈을 처음으로 어긴 로마 제국 역사상 특기할 만한 사건이지만 문헌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다키아 전쟁기를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는 트라야누스 원기둥이라는 전쟁 장면 약 140개를 조각한 유적을 통해 서술했다.
이렇게 다키아 전쟁을 통해 영토확장을 한 트라야누스 황제는 전쟁과 영토확장 이외의 내치, 공공사업에 많은 역량을 부어 특히 도나우 강에 길이 1135미터, 높이 27미터, 너비 12미터 의 규모에 20개의 석조교각이 떠받치는 '트라야누스 다리'(다키아 정복을 위한 목적이긴 했지만)를 1년만에 완공하기도 하였다. 이 다리는 제국 말기 야만족의 침입이 두려워 목조부분을 파괴시켜 다리의 기능을 상실하지만 교각은 19세기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도나우강에서의 대형선박의 통행을 위해 폭파시킬 때까지 남아있었을 정도로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지칠줄 모르는 일꾼' 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제국 전역을 순행하여 제위기간 21년 중 근 10년이라는 기간동안 이탈리아 본국 밖으로 순행을 하며 군단순회, 속주의 공공사업등을 재정비하였다. 특히 브리타니아(영국)에는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축조하여 라인강의 게르마니아 방벽 못지 않은 튼튼한 방위체제를 완성하였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재위기간 있었던 많은 일 중 유대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서기 131년에 발생한 유대교도의 반란에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4만 병력의 군단병과 보조병을 동원해 융단폭격 방식으로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나가며 토벌해 서기 134년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136년 9월 26일 마지막으로 저항하던 세력을 베틸이라는 곳에서 전멸하면서 유대의 반란으로 시작된 유대전쟁이 끝났다. 이렇게 유대전쟁을 끝낸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대교도의 예루살렘에서 강제추방하는 이산을 뜻하는 '디아스포라'를 명령한다. 원로원의 의결을 거쳐 공식발효한 '디아스포라'는 2차대전 종전이후 이스라엘 국가가 수립될 때까지 1800년이 넘도록 계속된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뒤를 이어 서기 138년부터 161년까지 23년동안 재위에 있으면서 특기할만한 새로운 일은 하나도 하지 않은채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기만 하며 내치에 힘을 쓴다. 그 결과 동시대의 로마인들에게 '질서있는 평온'이라는 수식어를 듣는 시기의 황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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